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리야마 치아키 (문단 편집) === 사진집 신화소녀 논란 === 1997년 우리나이로 14살 때 [[누드]]가 약간 포함된 사진집 신화소녀를 낸 적이 있었다. 1991년에 [[미야자와 리에]]의 「Santa Fe」를 촬영한 유명한 사진작가인 [[시노야마 기신]] 작가의 작품인데도 누드가 거의 없다. 현재 이 사진집은 99년 도쿄 조례가 제정된 이후 출판사인 신초샤(新潮社) 자율규제로 절판시킨지라 더이상 출판되지 않는다. 예전에 그녀의 누드집 중고판은 발매 당시 원가의 10배 이상 가격으로 암거래중이는 말도 있지만 이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소지마저 불법화 시켜서 지금은 개인간의 거래마저도 불법이다. 사실 배우 본인은 이 사진집을 찍었던 과거에도 뭐라 말하지 못할 위치에 있어서일 뿐이었지 호의적인 태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해당 사진집 '신화소녀'가 현재 기준으로는 [[아동 포르노|불법]]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상당한 작품이라. 사실제작 당시에는 합법이었고 수위가 높은 편이 아니니 하는 것도 해당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아는 이야기지, 언론등을 통해 '''쿠리야마 치아키, 아동 포르노 출연 경력 밝혀져''' 라는 기사로 접한 사람들은 진짜 아동 포르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여배우로서 이미지나 활동은 사실상 끝장나는 거다. 더구나 [[킬 빌]] 출연을 통해 아동포르노에 대한 규제와 처벌, 사회적 거부감이 엄격한 영미권에도 꽤 알려진 배우인 걸 생각하면... 호의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해당 사진집을 찍었던 사실 자체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여담으로 사족을 달면 당시 일본의 10대 소녀 누드 사진집 분야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형태로 과열되어 있었다. ~~ 사실 90년대 미야자와 리에 이후로 잘나가는 연예인들도 누드집을 상당히 찍던 시기이기도 하다. ~~ 일례로 5살에 아역모델로 데뷔해 모리나가 유업, 게이세이 전철, 반다이, 파나소닉, 도시바 등 쟁쟁한 대기업 CF에 출연한 것으로 이름값이 높았던 이시모토 미노리(石木みのり)의 경우 외모에 비해 심히 부족했던 연기력으로 인하여 아역 탤런트로 이미지 전환에 실패하자 분위기 전환을 위하여 레오나(レオナ)라는 명의로 1997년 14세 무렵, 불과 3~4개월 사이에 2권의 고수위 누드 사진집과 메이킹 비디오를 출간한 사례가 있었고 이후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여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은 아역 탤런트 스와노 시오리의 경우도 데뷔 당시 화제를 모으기 위해 사진집을 출간했다. 이외에도 아예 여러명의 모델들을 월급제로 장기간 고용해 두고 공장식으로 누드 사진집을 제작하여 출간한 리키타케 야스시 같은 작가도 있을 정도. 하지만, 이런 제작 행태는 미야자키 츠토무 살인사건등으로 인하여 소아성애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극히 나빴던 당시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와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었고, 결국 언론과 여론에게 집중공격 당한 끝에 99년의 법 제정으로 미성년자의 누드 사진집 출간이 전면 금지되게 된다. 문제는 이런 경우 이후 연예계 진출에 누드모델 활동 경력이 오히려 일종의 족쇄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고생이 되자마자 누드 사진집으로 데뷔한 요시오카 마유미 같은 경우는 그냥 여고생 누드모델로 각인돼서 원하던 연예계 생활은 못하고 여러 권의 누드 사진집과 영상물에 잡지의 누드 화보로만 활동하다 성인이 되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앞의 사례에서도 이시모토 미노리의 경우 사진집 자체는 잘 팔렸지만 분위기 전환에는 실패하여 누드 사진집 출간 이후 연예활동 경력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후 마츠카와 마미야(松川マミヤ)라는 이름의 그라비아 모델로 나왔지만 이전의 이시모토 미노리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다시 활동이 중단되었다. 스와노 시오리의 경우도 영화나 드라마 출연을 통해 연기력에 상당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누드 모델 경력에 끝까지 발목을 잡혔고, 예명을 대여섯 번씩 바꾸면서 어떻게든 이미지를 전환해 보려던 노력도 실패하여 17세 무렵 세미누드 사진집을 하나 더 찍는 것으로 역시 연예활동 경력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꼭 누드가 문제는 아니다. 70년대 일본의 유명 여배우였던 세키네 케이코(関根恵子) 같은 경우는 중학교 졸업 후인 15살에 지금은 없어진 대형영화사인 다이에이(大映)에 입사해서 첫 영화부터 누드를 선보인 후 1년동안 6작품 연속 누드를 보여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작품에서 연출의 일부로 등장하는 누드는 예술적인 목적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기에 노골적인 목적의 누드 사진집과는 사회적으로 다르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시대적 상황 역시 소아성애에 대한 경각심이 그리 높지 않던 70년대와 사회 전반에서 심각한 문제제기가 일어나던 90년대의 상황은 결코 같지 않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 두 요소의 상호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미성년자 누드 매체의 제작량이 상대적으로 적던 70년대에는 예술적인 목적이라는 설명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제작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90년대에 말 그대로 쏟아져나오던 미성년자의 누드 매체들이 예술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설득력 없는 설득|변명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당연히 이러한 매체들은 성적인 목적의 누드로 여겨지게 되어 사회적 경각심을 더욱 고양시킨 것. 따라서 위의 사례들과 70년대 세키네 케이코의 사례를 비교하는 것은 썩 적절하지는 못하다.] 이후 잡지 DIME과의 인터뷰 등에서 '옛날 일은 힘든 일이 많아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서 누드 모델 경력이 연예계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분류:일본 여배우]][[분류:아역배우]][[분류:1984년 출생]][[분류:1989년 데뷔]][[분류:츠치우라시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